[황혼(黃昏) 부라보]
멋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통 ‘멋’하면 젊은이들의 전유물(專有物)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황혼(黃昏)녘의 남성(男性)들이 버스나 지하철(地下鐵) 등에서 노인(老人)이나 병약자(病弱者)에게
서슴없이 자리를 양보(讓步)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젊은이들에게서 쉽사리 보지 못하던 멋을 느끼곤 합니다.
마치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보석(寶石)을 감상(感想)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아마 그런 광경(光景)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년의 멋스러움이 무엇인지충분(充分)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大部分)의 노인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미 지나간 젊음을 아쉬워 하기만 했지 찾아오는 노년에 대하여 멋스럽게 맞이할 생각을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남자(男子)들이 노년(老年)을 지나면서 점차 멋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노년심리학(老年心理學)에서는 우리가 노년기(老年期)에 접어들면서 겪는 심리적(心理的) 변화(變化)를 다음과 같이 요약(要約)합니다.
1. 첫째: 우울(憂鬱)함입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외모(外貌)도 시들어 자신(自身)을 매력적(魅力的)으로 봐주는 사람이 별로 없지요.
사회적(社會的)인 활동(活動)에서도 점차 밀려나니 어쩌면 당연(當然)한 변화일 것입니다.
2. 둘째: 내향성(內向性)입니다.
노년에 들어서 지난 인생(人生)을 회고(懷古)하는 것 자체가 내향성입니다. 경험(經驗)과 감정(感情)에 귀를 기울이게 되지요.
3. 셋째: 성(性) 역할(役割)이 변화(變化)한다는 점입니다.
남자의 역할이 주로 직업(職業)에 의존(依存)하기에 은퇴(隱退)를 기점(基點)으로 약화(弱化)합니다.
그러나 여자(女子)의 구실은 가정(家庭)과 친구(親舊)들 중심(中心)이기에 계속(繼續) 강성(强性)해집니다.
즉, 남자 노인들은 여성적이 되고, 여자 노인들은 남성적으로 바뀌는 경향(傾向)이 있는 것이지요.
4. 넷째: 신체적(身體的), 심리적인 경직성(硬直性)입니다.
낯선 곳, 새로운 취미(趣味), 새로운 음식(飮食)을 시도(試圖)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고력(思考力)이나 판단력(判斷力)도 좀 더 보수적(保守的)이 되어갑니다. 왜냐하면, 위험(危險)을 피하는 것이 우선(于先)이기 때문이지요.
5. 다섯째: 옛것에 대한 애착(愛着)이 커지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놓습니다. 그것들이 자신의 정체성(停滯性)과 연결(連結)되기 때문이지요.
6. 여섯째: 조심성이 증가(增加)합니다.
능력(能力)에 대한 자신감(自信感)이 줄어듭니다. 게다가 실패(失敗)했을 때의 타격(打擊)도 크기 때문에 조심성이 커지지요.
7. 일곱째: 유산(遺産)을 남겨 삶의 의미(意味)를 찾으려 합니다.
유산은 자식(子息)을 위해서 남기는 게 아닙니다. 내가 이 세상(世上)에 존재(存在)했다는 흔적(痕迹)을 남기려는 욕구(欲求)의 표현(表現)이지요.
노년기의 우리가 진짜 남기려는 건 대개 정신(精神)이나 전통(傳統)입니다. 그런데 기를 쓰고 자식들에게 남기려 합니다. 그보다는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더 큰 공덕(功德)이 아닐까요?
어떻습니까? 우리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이런 심리적 변화를 겪지 않으시는지요?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타인과 대화(對話)가 통(通)하고 새로운 경험(經驗)을 받아들여 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自己)의 주관적(主觀的) 세계(世界)를 유연(柔軟)하게 변화시키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계속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살지요.
그 차이(差異)는 결국, 자기 자신을 충분히 존중(尊重)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게 어떤 부족(不足)한 점이 있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존중받을 자격(資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역설적(逆說的)으로 자기가 실수(失手)를 저질렀을 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認定)하고 받아들입니다.
반면에 내가 존중받기 위해서는 완벽(完璧)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면 자신의 존재가치(存在價値) 자체(自體)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憂慮)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내가 틀린 게 아니라 세상이 틀렸다고 주장(主張)합니다.
그 결과(結果) 그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타인과 소통(疏通)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늙음에는 선택(選擇)의 여지(餘地)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결국에는 늙어가고 종래(從來)에는 모두 죽습니다. 그러니 남은 선택지는 세상의 변화를 거부하는 경직된 노인으로 늙어갈 것이냐?
아니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자기 구실을 찾아내고 노년의 장점(長點)을 발휘(發揮)하는 멋진 노인으로 늙어갈 것이냐? 입니다.
노년의 멋이란 외모에서 풍기는 것보다 정신적인 면까지 함께 조화(調和)를 이룰 때 더욱 아름다운 것입니다.
한적(閑寂)한 들길을 걸으며 작은 꽃송이 하나에도 즐거워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노년의 멋스러움은 한결 돋보일 것입니다.
그런 노년의 멋을 가지려면 물론 건강(健康)이 첫째일 것입니다. 저처럼 다리가 아프거나 몸이 피곤(疲困)하면
만사(萬事)가 귀찮아져서 생동감(生動感) 있는 생각도,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유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바른 정신과 의식(意識)을 가지려면 그에 못지 않게 건강을 지켜야 하고, 마음과 정신이 건강해야 비로소 여유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마음씨가 따뜻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富裕)한 사람은 가슴이 넉넉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은 먼저 남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용기(勇氣) 있는 사람은 남의 잘못을 용서(容恕)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智慧)로운 사람은
사랑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이 모든 것을 행(行)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幸福)한 사람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황혼(黃昏) 부라보’를 외치는 사람일 것입니다.
황혼 부라보를 외치는 사람은 모든 일을 긍정적(肯定的)이고, 적극적(積極的)이며, 정열적(情熱的)으로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 "넓고 깊고 느리게!", "황혼 부라보!"를 외치며 늙어 가면 성공적(成功的)인 인생(人生)이 아닐까요?<덕산 김덕권 著>
- 받은 메일 옮김 -